<슈렉 첫번째.  아름다운 피오나 공주와  뚱뚱하고 지저분한 녹색괴물 슈렉. 동화속 주인공과 거리가 겁나먼(far far away) 슈렉이 만화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파격을 보였죠^^>

 

영화 <슈렉>을 처음 접했을 때 느꼈던 신선한 충격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식스센스>보다 더 짜릿했던 반전.

어른들에게도 익숙한 동화와 디즈니 만화주인공들을 내세워 유쾌한 상상력과 재치로 현실을  비꼬는 고차원 유머.


<슈렉>은 단순히 녹색 괴물의 이름이 아니라 통속과 상식을 벗어던진 일탈의 아이콘이 되어 버렸습니다.

 

관객의 눈높이가 확 높아지다 보니 <슈렉2>에서는 제작진들의 고민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슈렉3>는 제작진들의 피로감이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슈렉의 인기에 그냥 묻어가는 느낌이랄까...


드디어 슈렉 시리즈 4번째.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건 더 이상 '슈렉'이란 아이콘이 주는 '슈렉스러움'을 쫓아가기에 너무 벅차다는 항복선언처럼 느껴졌습니다.

 

 

      <슈렉 포에버의 포스터>


 

<슈렉 포에버>는 잘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입니다. 

슈렉 전편들이 없었다면 깔끔한 가족영화로 손색이 없습니다.  3D 도 실사영화보다 눈이 피곤하지 않고 재미를 더해줍니다.

 

그런데...

 

슈렉입니다.  슈렉스러워야 하는....

제목이 <슈렉 포에버(Shrek forever after)>입니다.  4편 이후로(after) 슈렉은 관객들의 마음 속에 슈렉 그 자체로 영원히 (forever) 남게 될 거란 얘깁니다. 도대체 어떤 결말로 끝을 맺기에...?

 

영화 <슈렉>은 ‘무언가 놀랄만한 게 숨어있을거야’ 하는  기대감을 안고 극장을 찾아든 슈렉 팬들의 마음을 채워줘야 합니다. 고품격 유머와 기발한 아이디어, 번득이는 재치, 현실을 비트는 풍자... 등등이 영화 속에 녹아들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슈렉 포에버>는 잔잔하게(?) ‘그들은 평생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동화의 해피엔딩을 따라갑니다. 

전작의 동화비틀기와 재치넘치는 발상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나마 뚱뚱해진 ‘장화신은 고양이’가 그 아쉬움을 조금 채워주긴 했지만...

 

 <잃어버릴뻔한 슈렉의 사랑, 피오나>


영화를 보고 나오자마자 스토리작가들을 검색해봤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작가는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이혼한 상태일꺼야.’ ‘비만에 대해 뭔가 응어리진게 있는게 틀림없어. 작가도 뚱뚱한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작가는 두사람 다 남자더군요.

 

 

 

<슈렉포에버의 screen writers.  Darren Lemker, Josh Klausner>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에 지루해 하며 단 하루라도 일탈을 꿈꿔보는 모습은 결혼한 남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하게 되죠. 단 하루, 책임질 필요없는 자유가 주어집니다. 카펜터스의 <Top of the World>가 흘러나오고 이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은 최고의 즐거움을 만끽합니다.

그런데 잃어버리고 나니까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가족이죠. 일탈의 일시적 쾌락 보다는 단조롭지만 익숙한 일상에 더 큰 행복이 숨어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영화 <패밀리맨>의 애니메이션판입니다.

“총각 시절을 그리워하거나 딴데 눈돌리려 하지말고 아내와 아이들이 있을 때 잘 해!” 하는 메시지인데... 때문에 작가가 혹시 여성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 것이죠.


현대인들의 또다른 화두, 비만.

 

비만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의사이다 보니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볼 때도 등장인물들의 체격을 눈여겨 보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주인공들은 키가 크고 날씬합니다. 그 반대편 악당들은 남자는 키가 작고 여자는 뚱뚱한 경우가 많습니다.

 

 

        <인어공주. 주인공은 S라인의 늘씬한 몸매지만 악역은 D라인의 비만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피오나 공주 역시 낮에는 ‘날씬한’ 공주의 모습이지만 밤에는 ‘뚱뚱한’ 괴물의 모습으로 바뀝니다.  ‘저주받은 몸’은 뚱뚱해야 하나 봅니다.ㅠㅠ

 

예외없이 괴물(ogre) 슈렉도 뚱뚱합니다. 영화 <슈렉>이 슈렉스러웠던 건 뚱뚱해서 주인공 역으로 맞지 않은 슈렉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피오나 공주가 마법이 풀릴 때 모두의 예상을 깨고 뚱뚱한 모습으로 되돌아갔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이라고 해석했지만 출렁거리는 뱃살을 미화(?)한걸 제외하곤 그다지 달라진 건 없어 보입니다. 여전히 악역은 키가 작은 ‘루저’들이고...(이번에 등장하는 럼펠도 루저에 속하죠)

 

 

<루저 악역 럼펠. 키높이 구두 처럼 높게 치켜올린 가발로 약점(?)을 커버해 보지만 역부족...>

 

 

<슈렉포에버>에서는 우리의 귀염둥이 ‘장화신은 고양이’가 D라인 몸매로 나옵니다. 소파에서 일어나기 버거워하는 모습은 21세기 우리들의 자화상입니다.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먹고 맛있는 생쥐가 나타나도 “다음에 잡아먹지”하면서 움직이는 걸 귀찮아 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고 익살스러운 장면이었습니다. 비만해지면 만사가 귀찮아집니다. 가장 맛있는 쥐를 잡아먹는, 고양이에겐 아주 기본적인 신체활동 조차 포기해 버립니다. 걷기는 운동이 아니라 일상임에도 하루 30분도 걷지 않으려는 현대인들의 모습이 오버랩되더군요.

 

 

 <슈렉 포에버 최고(?)의 반전, 복부비만이 된 장화신은 고양이.  점점 비만해지는 우리 현대인들의 자화상 아닌가요?>


그나마 럼펠의 TV 대국민 메시지 전달에서 메이크업에 치중하고 장및빛 청사진을 보여주면서 진실을 호도하는 모습이 TV나 미디어를 이용하는 정치판의 모습과 흡사하여 비판과 풍자라는 슈렉스러움의 일면을 보여 준 장면이었습니다.

 

 

 

<먹어선 안돼! 슈렉의 목소리에 눈길은 슈렉을 향하고 있지만 본능에 충실한 혓바닥은 메이플시럽이 흐르는 와플에... 살찌지 않으려면 이런 음식을 피해야 하는데 주위엔 왜이렇게 달콤한 음식들이 넘쳐나는 걸까요? ㅠㅠ>

 

‘만약 슈렉이 태어나지 않았다면?’이라는 신선한 발상으로 시작한 <슈렉 포에버>는 슈렉이 럼펠의 사기극에 넘어가 하루살이 신세가 되어 버리지만 ‘True Love's Kiss'를 받으면 마법에서 풀려나는 것으로 스토리가 전개됩니다. 이번에는 피오나공주가 아니라 슈렉 자신이 키스를 받아야 합니다. 

         

<슈렉1>을 능가하는 충격적(?)인 반전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한껏 가질 수 있는 설정이지요.

만약 피오나 공주의 키스를 받는 순간 피오나와 슈렉의 마법이 풀려 잘생긴 남자와 여자로 바뀌는 설정이었으면 어땠을까요? 

충격보단 결국 슈렉도 어쩔 수 없이 디즈니 스토리를 따라갈 수 밖에 없구나..슈렉은 이제 끝이냐 하는 비난이 더 크게 일겠지요. 충격적인 반전이나 무릎을 탁치게 하는 번득이는 재치를 보여주기엔 힘에 벅차고 어설픈 반전을 만들어선 욕을 먹을게 뻔하고...


제작진들은 현명하게 반전 대신 평범한 결말을 선택합니다.  전편보다 재미없다는 말을 들을 진 몰라도 욕을 먹진 않을 테니까요.

 

슈렉스러움을 포기하고 ‘가정’으로 돌아와 어른과 아이가 함께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가족영화가 되어버린 <슈렉 포에버>는 팬들의 기대감을 충족시켜 주지 못했지만 <슈렉>을 영원히  기억의 창고 속에 추억으로 남겨두는 데에는 성공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피리부는 사나이의 피리소리에 맞춰 오거(ogre)들이 춤을 추는 모습. 우리나라 부채춤을 패러디한거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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